그날 밤 늦게 조용히네가 내 마음에 닿아왔다 - 하얀 국화가 피어 있는 날이었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 # 그 후 “석진아, 전정국이한테 카드 왔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자 쪼르르 달려 나온 석진에게 확인하던 우편물을 통째로 건네주었다. 민윤기가 떠나고 반년쯤 후, 학교를 휴학한 전정국도 유럽 행 비행기를 탔다. 목적도 일정도 없는 여행이라더니 돌아오지 않...
별일 아니려니 했다.우리가 벌레에 쏘이곤 처음에는 퍽 가벼이 여기는 것처럼. - 네가 길을 잃어버리지 않게, 파트릭 모디아노 # 또 다른 이야기 01 (정국) 나는 고아였다. 물론 태어났을 때부터 고아였던 것은 아니고, 부모가 있긴 했다. 인생의 아주 초반에는. 똑똑한 여자는 무척이나 가난했고, 착한 남자는 한량이었다. 갓 스무 살을 넘긴 나의 부모들은 의...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너를 생각하는 것은 나의 일이었다. -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김연수 #. 끝 (석진) 추적추적 비가 오는 날이었다. 한층 더 떨어진 기온에 난방을 돌려도 거실은 추웠다. 소파에 길게 드러누워 태블릿을 들여다보는 태형에게 얇은 이불을 덮어주었다. 그는 소파 앞 바닥에 앉아 등을 기대고 앉은 내 머리칼을 손만 뻗어 만지작거렸다. “...
잠겨 죽어도 좋으니 너는 물처럼 내게 밀려오라 - 낮은 곳으로, 이정하 #. 06 (태형) 퇴근길에 맞은편 건물 입구에 놓인 벤치에서 익숙한 뒷모습을 보았다. 얼마나 더 걸었을까, 무심히 지나쳐 한참을 걷다 갑자기 발걸음을 돌려 되돌아갔을 때도 그 자리에 앉아있었다. 멍하니 앉아있는 그의 품에 자판기에서 뽑은 밀크티를 던져주었다. 엉망이 된 에이프런을 두르...
잠겨 죽어도 좋으니 너는 물처럼 내게 밀려오라 - 낮은 곳으로, 이정하 #. 05 (태형) 우울하다는 것은 늘 침울한 얼굴을 하고 있거나 매일 눈물을 흘리고 앉아있는 것만은 아니다. 나는 원래도 말이 많거나 감정을 잘 드러내는 편이 아니었으므로, 대외적으로는 비교적 정상으로 보일 수 있었다. 가끔 혹은 자주, 두통과 불면증, 알코올 중독, 지독한 무기력에 ...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너를 생각하는 것은 나의 일이었다. -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김연수 #. 04 (석진) 태형을 만나고, 윤기가 돌아와 나는 다시 안정을 찾았다. 빈집에 앉아있을 때마다 윤기가 한 말이 생각나고 순차적으로 태형이 떠올라 마음이 파도처럼 일렁였다. 가족들의 따스함이 배어 있는 집에서도, 늘 말없이 나를 돌봐주던 윤기가 곁에 있어도 ...
잠겨 죽어도 좋으니 너는 물처럼 내게 밀려오라 - 낮은 곳으로, 이정하 #. 03 (태형) 귀국 후 매주 방문하는 병원의 진료실은 항상 라벤더 향이 났다. 식상하긴 하지만 그런 평범함에서 오는 안정감이 있었다. 담당의는 결혼 후 복귀하고부터 습관적으로 네 번째 손가락의 반지를 만졌다. 어색한 듯, 확인이라도 하는 듯. 으레 조용하고 차분한 다른 상담과는 다...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너를 생각하는 것은 나의 일이었다. -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김연수 #. 02 (석진) 스무 살이 되던 그 겨울에, 대학 합격 발표가 났다. 정신을 못 차리고 있던 나 대신 결과를 확인해 준 누나가 소란을 떨며 가족들에게 알렸다. 나는 그렇게 기다리던 스무 살이 된 것도, 대학생이 된 것도 기쁘지 않았다. Y에게 제일 먼저 전하...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너를 생각하는 것은 나의 일이었다. -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김연수 #. 01 (석진) 해가 바뀌면 스물이 되는 것만을 기다리던 겨울, 나는 낯선 풍경 속에 서 있었다. 형이 근무하는 외과에 엄마 심부름을 올 때나, 아니면 꼭대기 원장실의 아버지를 보러 온다거나 할 때. 무심히 스치던 수많은 중에 하나일 뿐이었다. 하얀 바탕에 ...
#. 프롤로그 유난히 비가 많이 오는 여름이다. 싱크대에서 설거지를 하던 윤기가, 석진아, 하고 나지막이 불렀다. 동네 마트에서 사온 짐들을 식탁 위에 하나씩 풀면서, 왜, 하고 물었다. 소주, 맥주, 와인, 치즈, 소시지, 라면, 컵라면, 담배 등을 하나씩 내려 놓으면서 확인한다. 지난 번 일이 처음이었던 캐셔 직원이 수박을 두 개로 찍는 바람에, 하나...
울고 싶은 날이었다. 두어 달 전쯤, 파트타임으로 근무하던 피아노 학원에서 담당 학생에게 고백을 받았다. 나보다 열 살은 많아 보이는, 취미반의 회사원이었다. 회계사무실에 근무한다고 했던가, 어느 대기업 임원진의 비서라고 했던가. 아무튼, 야근이나 회식 등으로 종종 스케줄 조정을 요청하는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딱히 특이한 점은 없던. 당혹스럽긴 했지만 입장...
안녕하세요 를루슈입니다. 기다리셨을 다음 편은 없이 이런 공지를 올리게 되었습니다. 바깥 세상은 뭐가 어찌 돌아가는가… 변방의 무지랭이일 뿐인데다 들을 데도 물을 데도 없어 멍 때리고 있었습니다만, 감사하게도 저도 비공개로 돌려야하지 않을까 걱정해주는 분이 계셨어요!!! 저는 소식도 느리고 대처에 둔감해서 어차피 연재도 늦은 김에 겸사겸사 당분간 닫으려고요...
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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